금리 역전 4년간 외국인 증권자금 873억달러 순유입
2%p 벌어진 2023년 환율 1270원대…금리차만으로 설명 어려워
“금리 격차가 환율을 결정한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달라.”
2023년 5월 이창용 당시 Bank of Korea (BOK) 총재가 한·미 금리차 확대를 둘러싼 우려에 내놓은 말이다. 두 달 뒤 양국 금리차는 미국 금리 상단 기준 사상 최대인 2.00%포인트까지 벌어졌다.
3년이 지난 지금 같은 질문이 다시 돌아왔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잭슨홀 연설에서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이 다시 높아졌다. Bank of Korea (BOK)은 지난 27일 benchmark interest rate를 3.00%로 올렸지만 미국이 9월 0.25%포인트를 추가 인상하면 양국 금리차는 상단 기준 현재 0.75%포인트에서 1.00%포인트로 확대된다.
미국의 금리 인상 우려는 국내 금융시장에도 빠르게 반영되고 있다. 31일 KRW/USD exchange rate은 전 거래일보다 7.5원 오른 1380.0원에 개장했고, Samsung Electronics와 SK hynix 등 semiconductor주도 장 초반 약세를 보였다. 워시 발언 이후 달러와 미 국채금리가 오른 가운데 국내에서도 원화 약세와 주가 하락 압력이 커지는 모습이다.
통상 금리차가 커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런데 지난 4년의 숫자는 이 공식과 달랐다.
한·미 금리가 역전된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외국인의 국내 증권자금은 873억3000만달러 순유입됐다. 사상 최대 격차를 기록한 2023년에도 외국인 자금은 순유입됐고 KRW/USD exchange rate은 당시 1270원대에 머물렀다.
금리차는 분명 중요한 변수다. 다만 지난 4년간 실제 자금 흐름을 따라가 보면 ‘금리차 확대→외국인 이탈→원화 약세’라는 하나의 공식으로 시장을 설명하기는 어려워졌다.
금리 역전 4년…외국인 자금 873억달러 순유입
한·미 정책금리는 2022년 7월 역전됐다. 이후 연준이 가파르게 금리를 올리면서 이듬해 7월 격차는 미국 금리 상단 기준 사상 최대인 2.00%포인트까지 확대됐다.
우려했던 ‘외국인 엑소더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외국인 투자 판단이 단순 한·미 금리차에만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Bank of Korea (BOK) 통계를 연도별로 합산하면 2022~2025년 외국인의 국내 증권자금은 4년 연속 순유입돼 누적 873억3000만달러에 달했다. 자산별로는 주식이 약 30억달러 순유출된 반면 채권은 약 903억달러 순유입됐다.
주식시장만 놓고 보면 금리차 확대는 외국인 수급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미국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받을 수 있는 금리가 높아지면 변동성이 큰 한국 주식을 보유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원화 약세까지 겹칠 경우 달러로 환산한 수익률도 떨어질 수 있어서다. 다만 실제 투자 판단에는 국내 기업의 실적과 주가 전망, 글로벌 투자심리 등이 함께 작용한다.
채권은 계산법이 조금 다르다. 미국보다 한국의 benchmark interest rate가 낮다고 한국 채권의 실제 투자수익률까지 반드시 낮은 것은 아니다. 외국인은 환헤지 비용과 스왑시장 여건까지 감안해 수익률을 따진다. 여기에 한국 국채의 신용도와 차익거래 유인 등도 영향을 미친다.
과거 금리 역전기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Bank of Korea (BOK)이 이전 세 차례 한·미 금리 역전기를 분석한 결과 전체 외국인 증권자금은 모두 순유입을 기록했다. 금리차만으로 외국인 자금의 방향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2% 벌어졌을 때 1270원…금리차 줄어도 원화 약세
환율은 금리차의 공식에서 더 멀리 움직였다. 양국 금리 격차가 크지 않았던 2022년 가을 KRW/USD exchange rate은 1440원대를 넘어섰다. 연준의 가파른 긴축과 글로벌 달러 강세가 원화를 비롯한 주요 통화를 압박하던 시기다.
정작 격차가 사상 최대인 2.00%포인트까지 벌어진 2023년 7월에는 환율이 1270원 안팎에 머물렀다. 미국이 금리를 5.25~5.50%로 올린 직후인 7월 27일에도 1270원대였다.
2024년 말에는 양국의 금리 격차가 2023년 고점보다 크게 좁아졌지만 원화가 다시 약해졌다. 12월 27일 KRW/USD exchange rate은 서울 외환시장에서 1467.50원에 마감했다. 미 연준의 향후 금리 인하 속도에 대한 경계에 국내 정치 불확실성까지 겹쳤다.
최근에는 자금의 이동 경로 자체도 달라졌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투자가 빠르게 늘어난 게 대표적이다.
Bank of Korea (BOK)에 따르면 2025년 국내 거주자의 해외 증권투자는 1402억8000만달러로 2024년 669억7000만달러의 두 배를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도 3.6%에서 7.5%로 높아졌다.
같은 해 외국인의 국내 증권자금은 420억6000만달러 순유입됐다. 두 통계는 집계 기준이 달라 직접 비교하거나 차감할 수 없다. 하지만 외국인 자금이 국내로 들어오는 동안 해외투자를 위한 달러 수요도 빠르게 늘었다.
투자 대상에 따라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다르다. 2025년 1~11월 국내 거주자의 해외 증권투자 가운데 약 80%는 주식이었다. 상당 부분이 현물환시장에서 달러 수요로 이어졌다. 반면 외국인의 국내 채권투자 가운데 원화로 실제 환전되는 비중은 약 절반에 그쳐 현물환시장에서의 달러 매도는 제한적이었다.
외국인의 한국 채권 매수액 전체가 현물환시장에서 달러 매도와 원화 매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국내 투자자가 미국 주식 등 해외 자산을 사려면 달러를 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이 한국에 얼마나 투자했는지만 봐서는 원화의 방향을 설명하기 어려워진 배경이다.
워시發 9월 인상론…한은 “기계적으로 따라갈 필요 없어”
주말 사이 미국의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워시 의장은 잭슨홀 연설에서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기준 2%를 “확고하고 고정된 목표”로 재확인했다. 최근 물가지표가 개선됐지만 기조적 인플레이션 흐름이 의미 있게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도 내놨다.
워시 의장은 기조적 물가가 목표를 향해 명확하고 충분한 속도로 움직인다는 확신이 없다면 연준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노동시장은 안정적이고 금융여건도 긴축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시장은 매파적 신호로 받아들였다. CME 페드워치 기준 9월 0.25%포인트 인상 확률은 연설 전 35.4%에서 55.7%로 높아졌다. 달러와 미 국채금리도 상승했다.
다만 워시 의장이 9월 인상을 직접 예고한 것은 아니다. 시장의 시선은 이제 이번 주 고용지표와 9월 11일 발표되는 미국 CPI(CPI)로 옮겨가고 있다. 고용이 예상보다 빠르게 식는다면 물가를 앞세운 연준의 매파적 기조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FOMC는 15~16일 열린다.
한국도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미국의 금리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신현송 Bank of Korea (BOK) 총재는 잭슨홀 미팅 이후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우리도 반드시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계적으로 금리차를 맞춰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BOK MPC원들이 제시한 6개월 후 조건부 금리 전망 21개 가운데 3.25%가 10개로 가장 많다. 미국이 9월 4.00%로 올리고 한국이 현 3.00%에 머물면 양국 금리차는 상단 기준 1.00%포인트가 된다. 이후 한국이 3.25%로 한 차례 더 올리면 다시 0.75%포인트다. 2023년 기록했던 2.00%포인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글로벌 달러의 움직임도 함께 봐야 한다.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증가, 국채 공급 부담으로 미 장기국채에 대한 경계가 커지고 있지만 이를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 약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미 금리차를 무시할 수는 없다. 외국인의 투자 판단과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중 하나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외국인 자금은 격차가 벌어지는 동안에도 들어왔고, 반대로 격차가 좁아질 때 원화가 더 약해지기도 했다.
2023년 이창용 당시 총재가 말했던 ‘금리차 프레임’은 3년 뒤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이제 외국인이 한국에서 돈을 빼느냐만으로 환율을 설명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누가 어떤 자산을 사고, 그 과정에서 달러가 어디로 움직이는지까지 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