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美 증시 상장 검토·150억달러 조달 가능성…글로벌 IB 주관사 경쟁
한 달 전 50조원 가치서 최대 204조원 거론…AI eSSD 성장에 몸값 재평가
SK하이닉스(000660)의 미국 낸드 자회사 솔리다임(Solidigm)의 미국 증시 상장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달 국내 투자은행(IB) 업계를 중심으로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와 미국 증시 상장 가능성이 제기된 데 이어 최근에는 글로벌 투자은행들을 상대로 기업공개(IPO) 주관사 선정을 위한 경쟁까지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솔리다임이 이르면 내년 미국 증시 상장을 검토하고 있으며, 최대 1500억달러(약 204조원)의 기업가치가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예상 조달 규모는 약 150억달러(약 20조원)다.
솔리다임은 이번 주 IPO 주관사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글로벌 IB들로부터 기업가치 산정과 공모 구조, 상장 전략 등에 대한 제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논의 초기 단계인 만큼 기업가치와 조달 규모, 상장 시점은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미국 투자전문지 배런스도 솔리다임의 상장 검토 소식을 전하며 최대 1500억달러의 기업가치와 150억달러 규모의 자금조달 가능성에 주목했다. 한 달여 전 국내 시장에서 제기됐던 상장 가능성이 실제 IPO 준비를 위한 논의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50조원에서 최대 204조원…달라진 솔리다임 ‘가격표’
솔리다임의 자금조달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지난 8월이다.
당시 국내 IB 업계에서는 솔리다임이 미국 증시 상장을 염두에 둔 프리IPO를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시장에서 거론된 기업가치는 약 50조원이었다.
SK하이닉스는 8월 5일 해명공시를 통해 "해외 종속회사인 솔리다임은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당시 공시 대상이 된 보도는 솔리다임의 5조원 규모 프리IPO 추진설이었다.
9월 4일 재공시에서도 회사는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이후에도 프리IPO와 미국 증시 상장을 둘러싼 움직임은 이어졌다. 여기에 이번 주 글로벌 IB들의 IPO 주관사 경쟁까지 시작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시장의 관심은 상장 가능성 자체보다 실제 기업가치와 공모 구조로 옮겨가고 있다.
AI 투자 HBM 넘어 저장장치로…eSSD 가치 부각
솔리다임의 몸값이 다시 주목받는 배경에는 AI 데이터센터용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시장의 성장이 있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2020년 약 90억달러에 인수를 결정한 인텔 낸드·SSD 사업을 토대로 출범한 미국 법인이다. 서버와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 사용되는 고용량 eSSD가 주요 사업 영역이다.
AI 인프라 투자는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넘어 데이터 저장 영역으로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AI 모델의 학습뿐 아니라 실제 서비스를 반복 수행하는 추론 과정에서도 처리하고 저장해야 할 데이터가 늘면서 대용량 스토리지 수요가 함께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솔리다임은 QLC(쿼드레벨셀) 기반 고용량 eSSD를 앞세워 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AI와 데이터센터용 스토리지 수요 확대가 솔리다임의 독립적인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핵심 배경으로 떠오른 셈이다.
미국 내 생산기지 구축 가능성도 맞물린다. 로이터는 지난 18일 솔리다임이 미국에서 낸드플래시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뉴욕주 북부가 후보 지역 가운데 하나라고 전했다. 현재 솔리다임의 낸드 생산은 중국 다롄 공장이 중심이다.
당시 솔리다임 측은 장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지를 정기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구체적인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내 생산시설이 현실화할 경우 현지 AI 데이터센터 시장 확대에 대응하는 동시에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미국 공장 역시 현재는 검토 단계다.
‘1500억달러 몸값’…기존 주주 셈법은
솔리다임이 실제 상장에 나설 경우 SK하이닉스 기존 주주에게 미칠 영향도 관심사다.
지난달 프리IPO와 미국 증시 상장 가능성이 알려진 이후 시장에서는 외부 자금을 확보해 낸드와 eSSD 사업에 대한 성장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외부 투자자 유입에 따라 SK하이닉스가 보유한 솔리다임의 경제적 지분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솔리다임 IPO는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과 구조가 다르다. ADR은 SK하이닉스가 직접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하는 반면 솔리다임 IPO는 자회사에 외부 주주가 참여하는 구조다. 공모 방식과 규모에 따라 SK하이닉스가 보유한 솔리다임 지분율이 낮아질 수 있다.
이번에 최대 1500억달러라는 새로운 가격표가 등장하면서 기존 주주의 셈법도 달라질 여지가 생겼다.
1500억달러(약 204조원)는 지난달 국내 시장에서 거론됐던 약 50조원의 4배를 웃도는 규모다. 두 숫자 모두 확정된 기업가치가 아니어서 직접 비교에는 한계가 있지만,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수록 상대적으로 적은 지분으로도 대규모 성장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로이터가 전한 예상 조달액은 약 150억달러(약 20조원)다. 이 자금이 AI 데이터센터용 eSSD와 낸드 생산능력 확대 등에 투입된다면 SK하이닉스가 직접 부담해야 할 투자비를 낮추면서 솔리다임의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
반대로 실제 상장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외부에 내놓는 지분 규모가 커진다면 기존 주주의 경제적 지분 감소 문제가 다시 부각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상장 자체보다 솔리다임이 어느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지, 외부에 어느 정도의 지분을 내놓는지, 상장 이후 SK하이닉스가 얼마나 지분을 유지하는지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HBM에서 eSSD와 낸드로 확산하는 가운데 솔리다임이 미국 증시에서 독립적인 기업가치를 인정받는다면 SK하이닉스의 낸드 사업이 재평가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가치가 기존 SK하이닉스 주주에게 얼마나 돌아갈지는 향후 공개될 공모 구조와 자금 사용처가 가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