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베라 루빈' 본격 생산…HBM4 공급 경쟁도 본궤도
SK하이닉스 선두 속 삼성 공급 확대…HBM4E까지 승부 이어져
엔비디아가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과 함께 차세대 인공지능(AI) 플랫폼 '베라 루빈(Vera Rubin)'의 본격 생산을 공식화했다. 블랙웰이 이끈 AI 투자 열기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도 HBM4를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26일(현지시간) 엔비디아의 2027회계연도 2분기 매출은 962억달러, 데이터센터 매출은 890억달러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06%, 117% 증가했다. 3분기 매출 전망도 1080억달러로 제시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AI 인프라 구축이 전속력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베라 루빈이 본격 생산 단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블랙웰 수요가 여전히 강한 상황에서 후속 플랫폼까지 생산에 들어간 것이다.
국내 메모리 업계에는 실적 숫자 못지않게 이 대목이 중요하다. HBM3E를 탑재한 블랙웰에서 HBM4 기반 루빈으로 제품 축이 이동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도 다시 시작된다. 젠슨 황 CEO는 지난 6월 방한 당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루빈용 HBM4를 공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블랙웰서 루빈으로…삼성, HBM4서 존재감 확대
HBM3E까지 엔비디아 공급망에서는 SK하이닉스가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공급이 지연되면서 좀처럼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HBM4에서는 출발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1c D램과 4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적용한 HBM4의 상용 양산·출하를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가 인증을 먼저 완료하고 2분기 출하에 들어가면서 엔비디아 루빈 플랫폼에서 입지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했다. SK하이닉스는 인증 일정이 늦어지면서 본격적인 HBM4 양산 확대 시점이 3분기로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매출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3분기 HBM4 매출이 전분기 대비 3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HBM3E에서 뒤처졌던 삼성전자가 HBM4에서는 초기 공급부터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부분이다.그렇다고 SK하이닉스가 쌓아놓은 우위가 단기간에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엔비디아와의 관계는 차세대 제품으로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는 지난 6월 차세대 AI 메모리 개발·공급을 위한 다년간 기술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베라 루빈 AI 슈퍼컴퓨터와 베라 CPU 등 엔비디아의 차세대 플랫폼에 필요한 메모리를 공동 개발한다. 이미 만들어진 HBM을 공급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엔비디아의 제품 개발 단계부터 필요한 메모리를 함께 맞추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HBM4에서 HBM3E 때 잃었던 시간을 만회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먼저 확보한 공급 우위에 엔비디아와의 공동개발이라는 연결고리를 더했다.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초기 인증 시점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 공급 물량과 수율이 확인되기 시작하면 HBM4에서 벌어진 변화의 폭도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성능만으론 부족하다…HBM4E 승부 가르는 ‘공급력’
HBM4 물량 경쟁이 한창인 사이 다음 승부도 이미 시작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글로벌 고객사에 HBM4E 샘플 출하를 시작했고 SK하이닉스도 6월 12단 HBM4E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공급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엔비디아의 선택이다. 차세대 제품이라고 해서 가장 높은 사양의 메모리만 고집하지 않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루빈 이후 준비하는 '루빈 울트라'에 당초 12단 HBM4E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최근 8단 HBM4E와 12단·8단 HBM4까지 선택지를 넓혔다. D램 공급 제약과 12단 HBM4E의 인증 일정, 초기 수율 등이 변수로 꼽혔다. 최종 메모리 사양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최고 성능의 HBM을 만드는 것과 엔비디아가 필요로 하는 시점에 필요한 만큼 공급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HBM 세대가 빨라질수록 고객 인증과 수율을 잡는 데 걸리는 시간도 실제 공급 물량을 좌우한다.
HBM4부터는 메모리 업체의 경쟁력도 D램 자체 성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로직 기능을 담당하는 베이스 다이의 비중이 커지면서 설계와 파운드리, 전력 효율까지 맞물린다. 삼성전자가 자체 D램과 파운드리를 함께 보유한 점을 HBM4의 강점으로 내세우는 이유다. SK하이닉스는 먼저 확보한 양산 경험과 엔비디아를 비롯한 고객사와의 공동개발에서 우위를 이어가고 있다.
시장 여건은 두 회사 모두에 우호적이다. 엔비디아는 중국 데이터센터 컴퓨팅 매출을 제외하고도 3분기 매출 1080억달러를 내다봤고, 트렌드포스는 2027년 HBM 비트 출하량이 전년 대비 50~60% 늘어도 수요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이제 관심은 HBM 수요가 더 늘어날지보다 늘어나는 물량을 누가 더 가져갈지로 옮겨간다.
블랙웰에서는 SK하이닉스가 먼저 달렸다. 루빈에서는 삼성전자가 HBM4 공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추격이 실제 점유율 확대로 이어질지, SK하이닉스가 기존 우위를 루빈 울트라와 HBM4E까지 가져갈지는 결국 실제 공급 물량에서 확인될 전망이다.







